대한민국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이제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자. "불쌍한"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동정심과 불평을 던져버리자. 그리고 지금 당장 자신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하자. 그 길만이 이 불공평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중 -리처드칼슨
알람 시계가 아침을 알린다. 김성열 과장은 마지못해 눈을 떴다.
‘오늘은 일찍 출근해서 미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제 술을 마셨더니 피곤하네. 에라 모르겠다. 와이프가 깨워주겠지’
“여보, 아침 식사하고 빨리 출근하세요 여보, 일어나세요. 회사 늦겠어요, 여보~”
“응, 알았어. 그런데 지금 몇 시야?”
“벌써 일곱 시 사십 분인걸요”
“뭐야! 이런 제길 큰일 났네, 아침에 미팅이 있었는데. 조금 일찍 깨우지 그랬어?”
“당신도 참! 아까도 깨웠는데 대답만 하고 다시 잠들었잖아요”
김과장은 부랴부랴 세수하고 옷을 차려 입었다. 아내의 식사하라는 말에 들은 체하지도 않고 늦게 깨웠다며 화를 냈다. 아내가 다시 무어라 얘기를 했지만 댓구도 않고 집을 나서 전철역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고 버스는 왜이리 늦게 오는지, 머피의 법칙이 항상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느낌이다. 바쁠 때는 항상 버스가 늦게 오거나 예상치 못했던 일로 시간이 지체되기 일쑤이다.
서둘러 전철역에 도착했다. 입구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무료신문들. 요즘은 무가지 발간이 유행처럼 번져서 종류도 다양해졌다. 예전처럼 전철역에서 무가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설사 지하철 입구에 놓여있는 신문이 없다고 해도 전철에 탑승하면 승객들이 읽고 놓고간 신문들로 짐칸이 난장판이다. 그 중에 괜찮은 녀석을 집어서 읽기만 해도 된다.
‘요새 경쟁이 치열하네. 이제 신문 차지하기 위해서 별로 노력 안 해도 되니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이 점점 살기 편해졌어.’
광고로 도배된 신문을 여기저기 넘기다 보니 대부분 어제 인터넷에서 봤던 기사들이다.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어 관심을 기울인다.
직장인 자기계발 항목들 -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항목(복수응답)"으로는 '영어회화'가 43.1%로 가장 많았으며, △컴퓨터 관련 38.4% △전문서 독서 30.1 △학원 수강 및 자격증 준비 25.0% 등으로 나타났다.) 독서 시간은 전세계적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김과장은 기사를 읽으면서 두 달 전 등록한 영어회화 학원이 생각났다.
‘그래도 나는 영어 학원을 다니니 자기계발을 하기 하는군. 뭐, 회사일로 규칙적으로 다니진 못해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있군. 뒤쳐지지는 않겠어’
김과장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남들 하는 만큼은 그 자신도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빠지지 않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남들보다 앞서가지는 못해도 뒤쳐지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신문을 뒤적이며 기사를 읽는다. 어제 인터넷에서 헤드라인만 읽었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본다. 어느덧 회사가 있는 역에 도착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전철을 타고 가는 시간은 30 여분 정도이다. 전철 안에서 무가지 한 종류를 읽으면 시간이 조금 남아서 딴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김과장은 가끔 두 종류의 신문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도 빨리 두 종류를 읽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회사 로비를 지나 출입증을 찍고는 막 닫히려고 하는 엘리베이터로 급하게 뛰어갔다. 손을 먼저 집어넣어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게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짜증내는 기색이 역력하다.
‘휴우, 엘리베이터 타기도 힘드네. 꽉 차지도 않았는데 왜들 그러지? 몇 초 늦게 올라간다고 큰일이라도 나나? 오늘 일진도 쉽지는 않겠어’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박본부장이 타고 있다. ‘이크, 큰일났네. 하필이면 박본부장님이 같은 엘리베이터에 탈게 모람’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본부장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딱히 할 얘기가 없기에 김과장은 인사만 하고 시선을 외면한다.
‘오늘 엘리베이터 속도가 왜이래? 빨리빨리 좀 올라가지. 그렇지 않아도 다음달 초에 박상무한테 보고해야 할 일도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하자 김과장은 급히 본부장에게 목례를 한 후에 복도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간다.
사무실 분위기가 냉랭하다. 항상 밝게 인사하고 웃으며 동료를 대하는 김과장은 오늘따라 쉽게 인사를 건네기가 계면쩍다. ‘내가 조금 늦어서 그런가? 아침부터 실장이 한 소리 했나 보군’
“김과장, 오늘 많이 늦었군”
“아, 네 실장님. 조금 늦었네요. 그래야 몇 분인데요. 얼른 미팅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래. 이따 11시 미팅에서 보자고”
어딘가 모르게 실장의 말투가 심상치 않다. 실장의 눈초리도 꼭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다.
‘아, 이놈에 회사는 실장 정도 되면 따로 방을 만들어 주지. 본부장만 별도의 공간을 줄게 뭐람. 근무 시간에도 자주 지나치고, 도대체 개인적인 일을 할 수가 없네, 아침부터 일진이 안 좋아. 팀장도 없으니 내가 타겟이구만.’
팀장은 해외에 장기 파견 중이라 대부분의 일을 김과장이 진행하고 있었다.
급히 자리에 앉으며 옆자리 전대리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전대리 무슨 일 있어? 아침부터 실장은 왜 또 심사가 뒤틀린 거야? -
-과장님 모르셨어요? 지난 번 올린 내년도 전략안이 깨졌다는 소문이에요. 본부장님 비서한테 들었는데, 저희들이 작성한 자료가 신통치 않았나 보네요-
-흠….그야 실장이 시키는 대로 작성한 거잖아?-
-그렇죠. 그래도 어디 실장이 그렇게 받아들이겠어요. 비서가 그러는데 자료 작성자들 핑계를 대더라고 하던데요. 에고, 이거 우리 단단히 준비해야 겠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해볼게.-
평소에도 미국 유명 MBA 출신이라며 거들먹거리기 일쑤이고 최신 마케팅 이론이니 케이스 스터디니 떠들기를 좋아했다. 미국의 최신이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 같은 실장의 모습이 생각나서 김과장은 나오는 웃음 참을 수가 없다. 미팅 시간이 걱정되기 보다는 실장이 깨졌다는 소문에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다.
‘아, 그것 참 셈통이군. 평소에 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자신이 지시 한 일이니 어떻게 얘기하나 지켜봐야지’
회의실에는 누군가 준비했는지 지난 번 보고한 신년 제품 전략안이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다. 화가 난듯한 실장이 앞에 서서 참석자들을 노려보는 듯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
“다들 들어왔나”
“예, 지난 번에 자료 작성했던 사람들은 모두 참석한 거 같습니다”
“그럼 시작하지”
김과장은 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전대리에게 메신저로 큰 소리 친 것과는 달리 정신없이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점심 시간 전까지 1시간 남짓한 회의 시간이 지겹기도 하고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른 채 흘러버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넘었다. 평소 같으면 학원 간다고 일찍 나왔겠지만, 분위기도 안 좋고 퇴근한 사람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실장이 퇴근을 하려고 한다. 그제서야 김과장은 피곤한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메신저를 켜고 전대리와 대화를 시작한다.
-전대리, 오늘 소주 한 잔 할까? -
-아 좋죠. 김과장님께서 쏘시는 건가요?-
-그래. 옆 실에 있는 오과장이랑 같이 한 잔 걸치고 가자-
-예, 실장이 이제 막 퇴근했으니 우리도 조금 있다 나가시죠? 그리고 인사팀에 있는 동기한테 들은 건데 좋은 소식도 전해드릴 겸~~-
-무슨 소식?-
-과장님이 쏘시면 전해드릴께요 ^^*-
-그래 그럼-
문득 김과장은 전대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이 회사에 대리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5년 남짓 근무 중이다. 경력직이라서 입사 동기가 거의 없는데, 공채로 입사한 동료나 후배들을 볼 때 서로 동기들끼리 어울리고 회사 내 정보도 빠르고 서로 이끌어 주는 모습에 가끔은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다. 국내 상위권 전자회사이고 미래가 밝기에 이직했지만 그래도 공채로 입사한 사람과의 거리감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직 전에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사람은 경영진까지 가기가 힘들다는 소문까지 들은 적이 있기에 더욱 열심히 해서 지금은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날이 있겠지. 그나저나 전대리는 또 무슨 소식일까? 은근히 마당발에 회사 내 소식통이니깐. 헛소문 제조기로도 이름 날리기는 하지만.’ 재빨리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 자 다들 한 잔 하지”
“ 김과장 아까 보니 실장한테 깨지는 것 같던데, 술 한잔 마시고 기분 풀고”
“ 그래요 김과장님. 기분 푸세요. 자, 건배”
“ 그래 우리끼리 모였으니 재미나게 먹고 마시자고, 건배”
술이 일순배하고 나자 약간에 취기가 오르며, 대화 주제는 역시나 전대리가 주도하고 있다.
“김과장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조만간 인사 조치가 있을지도 모른대요”
“그야 매년 초에 항상 있어왔잖아”
“올해는 다를 거래요. 인사팀 동기가 그러는데 대대적인 조직 이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김과장님도 승진할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리던걸요!”
“김과장, 축하해. 미리 축하해줘야겠어”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축하는 무슨. 전대리 또 헛소문 퍼뜨리고 다는 거 아냐?”
“과장님도, 저 못 믿으세요. 회사 내 정보하면 가장 신속 정확한 전화성 대리 저입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결과 나와보면 알겠지”
김과장는 전대리가 전해준 소식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아내가 아침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여보 오늘 일찍 들어오세. 오늘은 …..’ 아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한 것도 같고 일상적인 얘기를 한 것도 같고, 취기 오른 머리를 굴려봐도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쁜 하루와 회사 스트레스, 그리고 음주가 가져다 준 두통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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